“그는 하나님을 연구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에 눈이 멀었다” 빅토르 위고는 그의 저서 <레미제라블>에서 주인공 장발장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장발장이라는 비극적이지만 위대한 인물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철학으로 우월과 연민에 빠진 오만’한 사람들을 꾸짖는다. 나의 퇴임의 변은 다 알았다고 생각한 이후 내가 배운 것들에 대한 반성과 회고록이다.
서울로 대학을 다니며 대형 교회를 다닌 첫 1년의 경험은 내가 얼마나 좁은 세상에서 살고 있었는가를 깨우쳐 주었다. 내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세상 위에는 또 다른 공간이 있었다. 학교와 교회 밖으로 나와 방황하던 시기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회선교를 꿈꾸던 2년의 경험도 나의 세상을 넓혀줬다. 내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세상 아래에도 또 다른 공간이 있었다. 내가 나의 위치와 현실을 알게 되자 나와 다른 정체성을 지닌 주변 사람들은 여성으로서 장애인으로서 또 각자의 차이로서 살아온 삶을 이야기해주었다. 내가 전부라 생각했던 세상 옆에도 또 다른 공간이 있었다. 그것은 편집국장으로 있으며 확신하게 된 사실이다.
세상은 어느 방향에서 보든 강렬한 극단이다. 넓은것 보다 더 넓고, 깊은것 보다 더 깊다.
하나님을 연구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에 눈이 멀었다는 말을 곱씹어본다. 한때 나는 하나님을 설명하고 수호할 수 있다고 확신했었다. 그러나 이제 배운 것은 하나님은 나의 인지 체계를 초월하시며 수호가 필요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오히려 나의 편협한 인지체계가 하나님을 가두고 있었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웃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에 눈이 먼 사람은 다르다. 장발장은 평생 전과자로 낙인찍힌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임을 잊지 않았다. 한평생 선함을 잊지 않고 행했고, 마침내 우연히 일평생 자신을 괴롭힌 자베르 경감에게 복수할 수 있는 순간을 마주했을 때 장발장은 그를 용서하고 목숨을 구해주는 단계에 이르렀다.
삶이 언제나 뜻하는 대로 흘러갔는가. 아니다. 늘 갑작스러웠고 즉흥적이었다. 세운 계획들이 무너지고 어그러지더라도 결국 내가 믿고 나갈 수 있는 것은 섭리뿐이었다. <레미제라블>은 가브로슈라는 어린 아이의 입을 통해 냉정한 현실을 말하고 있다. 생 미셸의 빈민가에서 그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 이렇게 얘기한다. “이전에 우리는 왕을 죽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새로 온 왕을 섬긴다. 과거보다 나을 것도 없는. 이게 자유를 위해 싸운 나라다. 하지만 우린 이제 먹을 것을 위해서도 싸워야 한다.” 혁명 이후로 왕정 복고가 이루어진 프랑스는 이전과 다를 바 없는 불평등을 겪어야했다. 모든 것이 변했다고 외쳐댔지만 단 한 걸음도 떼지 못했다. 오히려 변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았을 뿐이다.
다 안다고 생각했을 때 오히려 더 깊은 무지의 심연이 다가왔다. 심연의 깊이를 아는 사람일수록 더 침묵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에 눈이 멀어야 진정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장발장의 역설은 편집국장의 자리를 내려놓고 떠나는 나에게 무거운 고민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앞선 많은 이들이 그러했듯 어둠 속에서 한 치 앞만 겨우 보이는 등불을 들고 한 걸음씩 발을 뗄 뿐이다. 그런 자세로 낮은 자들과 부족한 자들의 영원한 친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꿈꾸던 나라와 뜻을 구하며 두려움과 떨림으로 나아가려 한다.
53대 편집국장
김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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