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칼럼

사회에 존재하는 구조적 악과 그리스도인

조이삭 학우
(신학과17)

 “아픔 많은 세상에 주의 복음 들고 부르심 따라갑니다.” 총신대에 재학 중이라면 한번은 들어봤을 이 유명한 찬양의 첫 가사는 많은 이들로 하여금 감동과 울컥함을 느끼게 한다. 이 감정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양심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 감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를 볼 때 어쩔 수 없는 그리스도인이라 자신을 규정하게 된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죄의 문제를 놓고 매일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가는데, 오늘 나는 이 그리스도인들의 다른 책임을 죄의 다른 모습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은 선물로 받은 자유의지를 통해 하나님의 세계를 완전히 누릴 수 있었고, 어떤 고통 없이 온전히 형통한 기쁨을 만끽하며 살아갔다. 그러나 인간은 선물이었던 자유의지를 자율이라는 죄로 덮어버렸고, 타락 후의 인간은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누리거나 고통 없는 형통한 기쁨을 만끽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인간들은 하나님의 손을 잊고 자신들의 힘과 능력으로 그들 나름의 합리와 정의를 갖고 사회를 구성한다. 하지만 타락한 인간이 내세운 합리와 정의는 만들어진 사회의 병리적 구조가 되었고, 그것을 두고 “구조적 악”이라고 하게 된다.

 민중신학자 안병무 박사는 이 구조적 악이 바로 죄라고 이야기한다. 또 죄의 문제를 놓고 예수는 민중 속에서 사회구조적 악을 타파하기 위한 삶을 살았다고 말한다. 나는 그의 모든 신학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다만 사회구조 속 존재하는 악 또한 죄라는 것, 또 예수는 그 악을 타파하기 위한 사역을 했다는 부분에는 동의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해를 통해 빛을 내는 달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우리 삶에 담아내어 세상을 비춤으로 그 소명을 다한다. 결국 우리는 삶의 아주 작은 부분에서도 예수가 드러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구조적 악, 즉 죄로 인해 어두워진 우리 사회를 밤 속에 광명한 달처럼 밝혀내야 할 의무가 있다. 소금이 들어가 음식에 맛을 내야 가치가 있고, 시계가 움직여 시간을 알려야 가치가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가치는 어두운 세상을 밝게 비추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리스도인은 죄로 인해 어두워지고 피폐해진 사회의 구조를 밝게 비춰내야 한다. 먼저 오신 예수를 따라 무너져버린 정의를 다시 세우고, 기억에서 사라진 공의를 되찾아낼 때 우리는 음식 속 소금과 밤하늘의 달처럼 그 몫을 다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